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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야기 모음.Zip/책 리뷰 씁니닷

2025년 읽은 책 중 난이도 극上,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by 고녁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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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에 대해서 완벽한 해설을 바란다면 다른 포스트를 찾아보세요,,, 이 포스트는 전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먹먹문이라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소설을 항상 후루룩 넘길 정도로 쉽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쉬워서 재미가 없었던거지 지적 허영심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지 철학을 다룬 소설이 읽고 싶어 졌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본 '나는 왜 사는걸까?', '사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고민을 나 또한 정말 지겹게 해온 터라 인간의 존재, 의미 같은 것과 관련된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 장 폴 사르트르구토다.

 

 사실 난 장 폴 사르트르를 아주 살짝(?)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 바로 에스파 세계관 정리 영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돌 덕질이 이렇게 이롭다)

 

https://youtu.be/BW5Kp7J3WOk?si=usmIaRZyuqEVWhHU

 이 영상에서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아주 살짝 다루는데, 이때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는 문장이 내 마음에 콱 박혔었다. 그때의 나도 인생의 의미란게 대체 있긴 한 건가라고 생각할 때여서 아무래도 더 깊은 공감이 됐었을지도.

 

 그렇다면, 저런 X나 멋진 말을 한 장 폴 사르트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군지부터 정리를 해보자.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생애 : 1905.6.21 ~ 1980.4.15
국적 : 프랑스
직업 : 철학자,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그리고 실존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르트르의 명대사로는 위에 썼던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인데, 즉 인간에겐 무언가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툭- 먼저 던져진 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를 통해 '존재의 부조리함'을 아주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실험정신(?)을 보여줬다. 덕분에 난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이 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책 정보 정리

제목 구토
작가 장 폴 사르트르
출판사 문예출판사
페이지 436p
장르 철학
15,000원

줄거리 (결말 스포 있음)

프랑스의 항구 도시 부빌에 머무는

역사학자 앙투안 로캉탱

 

18세기 귀족 롤르봉 마르키의 전기를 쓰며

고요하고 무난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에게 점점 이상한 감각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길거리, 카페의 의자, 거리 사람들 모두

어딘가 낯설고 끈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감각은 점점 더 로캉탱을 갉아먹게 되는데,,

 

어느 날,

물수제비를 던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로캉탱.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그 장면에서

로캉탱은 돌이 물 위를 튄다 라는 사실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단순한 행위에서 세상이 이유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불쾌함을 느낀 것이다.  

 

그 때부터 그에겐 설명할 수 없는 구토감이 밀려온다.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고 

오직 존재한다는 사실만 남게 된것이다.

 

그는 결국 롤르봉에 대한 역사 연구를 포기하고

부빌을 떠나 파리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단골 카페에 가서

Some of these days 라는 노래를 듣는데,

멜로디와 리듬이 가진 견고함을 통해

로캉탱은 아주 큰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은 우연하고 혼돈스럽지만,

예술 안에서는 혼돈이 형식으로 정리될 수 있구나!

 

그래서 로캉탱은 소설 창작을 통해

무의미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야겠다는

도전을 결심하게 된다. 

 

이해 포기,,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는 주인공 로캉탱의 일기형식으로 전개가 된다. 그렇기에 전체의 이야기 맥락은 이어지지만 디테일한 흐름은 이어지지 않는다. 형식 자체가 뚝뚝 끊기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더 애를 먹었다. 

 

 어떤 형식이냐면,

이런 느낌이다. 맥락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  

 

 후반부로 갈수록 읽는것에 의의를 둔 독서였다. 아직은 내가 사르트르의 심오한 실존주의를 이해하기에는 교양이 부족한건가,, 아니면 내가 프랑스 문학과 잘 안 맞는 체질일 수도 있다(희한하게 프랑스 문학은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안된다)

 

 줄거리에서 얘기했던 물수제비를 하면서 구토를 느끼는 것도 앞 내용에서 어떤 이야기의 빌드업 같은 거 없이 정말 생뚱맞게 물수제비 휘릭 -> 구토감 느낌으로 바로 이어져서 읽는 내내 뇌가 고통스러웠다. 내가 너무 체계적인 이야기 짜임에 익숙해져있나 보다. 

 

 어쩌면 이런 맥락 없는 흐름까지도 사르트르가 의도한 것인가(어떤 존재든 의미는 원래 없는 것이기에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나타나고,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지만, 결코 연역될 수 없다."

 위 문장처럼 계속해서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 언급을 하긴 한다. 다만 내가 따라가지 못할 뿐.

"모든 것은 무상적이다.
이 공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간혹 이 사실을 알아채게 되는데,
그러면 속이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구토다. "

 문장 하나하나를 볼 땐 이해가 되지만 전체를 읽으면 이해가 안 되는,, 글을 읽지만 정말 읽는 게 글뿐인 그런 느낌. 계속 챗 지피티와 제미나이에게 물어물어 책을 겨우 완독 했다. 

 

  다음에 읽을 소설은 무조건 쉽게 읽히는 책이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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