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영화 블라인드입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네덜란드 영화인데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고 해요.
저는 평소에 로맨스 영화나 시리즈는 잘 즐겨보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이 영화의 결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서 영화 본 후 잔상이 남는 걸 선호하시는 분들이 좋아할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럼 리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에는 결말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제목 | 블라인드(Blind) |
감독 | 타마르 반 덴 도프 |
개봉 | 2007, 단 우리나라 개봉은 2021 |
주연 | 할리나 레인, 요런 셀데슬라 |
관람 등급 | 15세 이상 관람 등급 |
러닝 타임 | 102분 |
장르 | 로맨스, 시대물 |
언어 | 네덜란드 어(한국어 자막 O) |
제공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
| "진정한 사랑은 눈이 멀어"
주인공 뤼번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 때문인지 매사에 짜증이 많고 예민한 인물입니다. 엄마는 뤼번을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지만 물건을 던지고, 화내고, 심지어 이로 물기까지 하는 뤼번을 감당하지 못해 금방 관두기 일쑤였죠.
아들을 그렇게 둘 수만은 없었던 뤼번의 어머니는 뤼번을 위해 책을 읽어줄 사람을 고용합니다.
고용된 이는 '마리'라는 여자입니다. 얼굴이 흉터 투성이인 마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망토 깊숙이 얼굴을 숨기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뤼번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마리에겐 부담이 덜한 일이었죠.
마리의 첫 출근 날, 뤼번은 역시나 마리에게도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집니다. 하지만 마리는 이전에 왔던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아무렇지 않게 뤼번의 무례한 행동을 받아칩니다.
반대의 성향이 끌린다는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답게 뤼번은 어느새 마리의 말이라면 고분고분해지고...
결국 마리를 좋아하게 됩니다. 물론 마리도 뤼번을 좋아하게 되죠.
뤼번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의 책 읽어주는 목소리가 아름답듯이 얼굴 또한 아름다운 사람일 거라고 상상을 하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던 뤼번은 마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감각을 총동원합니다.
가까이 다가온 뤼번 때문에 화들짝 놀란 마리는 당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선 악취가 나!"
그랬더니 자기한테 냄새나나 확인하는 뤼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하잖아요?
뤼번은 다시 한번 다가가 마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겼어?
머리색이 어두워? 밝아?"
"빨간색이야."
"빨간 머리?"
"맞아, 그리고 길어."
"눈은 초록색이야? 갈색이야?"
"초록색"
마리는 자신의 외형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백색증 때문에 새하얀 머리를 빨간 머리라고, 또 눈동자 색은 초록색이라고 거짓말을 하죠. 게다가 사실 뤼번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지만 21살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마리에게 자신의 겉모습은 콤플렉스 그 자체였거든요. 뤼번을 좋아하니까 자신의 못난 겉모습을 알려주기 싫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뤼번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눈을 수술할 기회가 생긴거죠. 이제 세상을 볼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생긴 뤼번은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마리는 시력을 되찾은 뤼번에게 자신의 겉모습이 들통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결국 마리는 뤼번의 곁을 떠나게 되죠.
수술을 무사히 마친 뤼번은 시력을 되찾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병을 앓고 계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의지했던 마리는 사라졌습니다. 앞을 보기만을 그토록 원했었는데 막상 세상을 보게 된 뤼번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뤼번은 결국 마리를 찾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홀연히 사라진 사람을 무슨 수로 되찾겠어요.
...
그런데 그게 찾아집니다.
마리가 일하던 도서관에서요.
"실례지만 안데르센 책이 어딨 는지 아시나요?"
마리가 읽어줬던 안데르센의 책을 찾는 뤼번 ㅠ
하지만 이때까지 뤼번은 그 여자가 마리인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당연하죠. 뤼번은 마리가 빨간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여자인 줄 알고 있거든요. 안데르센 책을 찾아주려는 마리를 따라가는 뤼번, 책을 건네주는 마리의 흉터 투성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랍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본 마리의 얼굴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습니다. 사실 마리는 그동안 숨어 살긴 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 어쩌면 뤼번이 내 얼굴을 봐도 괜찮다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나라도 계속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책을 건네주며 뤼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숨어서 살던 대로 얼굴은 감춘 채 책만 건네줬을 거니까요.
놀란 뤼번의 얼굴을 보고 마리도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을 겁니다. 여기서 마리의 생각이 조금 궁금해지는데요. 마리는 '얼굴을 끝내 보여주지 말고 희망이라도 품고 살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아 뤼번의 솔직한 반응을 지금이라도 빨리 알아챈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어쨌든 책을 건네주고 돌아가는 마리..
그런데 그때,
뤼번은 익숙한 향을 느꼈습니다.
단번에 여자가 마리임을 알아챈 뤼번. 곧바로 따라가 이 책에 대해서 아냐고 묻습니다.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 젓는 마리에게 뤼번은 책을 몇 문장 읽어줄 수 있냐고 요청합니다.
마리가 책을 읽기 시작하자, 몇 마디 듣던 뤼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랑 같이 집에 가자"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마리임을 확실한 뤼번은 마리에가 다짜고짜 집에가자고 말합니다.
"내가 예쁜 줄 알았잖아..
날 봐
뭐가 보여?
..
지금 뭐가 보여?"
"마리"
뤼번은 마리의 겉모습이 아닌 마리 그 자체를 좋아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뤼번에게 마리는 빨간머리의 초록색 눈을 갖고 있는 예쁜 여자가 아니라 그냥 마리로만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마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겉모습을 뤼번에게 들키자 결국 또 뤼번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또다시 혼자 남겨져버린 뤼번.
(이 장면을 볼 때 곁에 아무도 없는 뤼번이 불쌍해서 마리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란 뤼번 곁에 머물며 상처받을 마리가 눈에 선해서 저도 '~ 됐으면 좋겠다'라고 판단을 못했습니다. 그냥 둘 다 어떤 식으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
허망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온 뤼번은 예전에 마리가 남겨둔 편지를 읽게 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전부
이 편지를 읽을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이겠지.
네 손을 통해서 보일 때 내가 제일 아름답다 느꼈어.
나의 사랑하는 이여
네 손과 귀로 날 찾아
최고의 사랑을 했으니 난 행운아야
제일 순수한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은 눈이 멀어
언제나 널 사랑하는 마리가
빠르게 편지를 읽어나간 뤼번은 그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결심을 한 듯 집 밖으로 걸음을 향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집 밖을 두리번거리죠.
결말 스포
결말 있습니다!!!
영화 보실 분들은 이거 보면 안 됩니다!!!
결말 스포 마지막 경고!!!!!!
뤼번이 집 밖을 두리번거리며 찾은 건 다름 아닌 고드름 2개입니다. 그렇게 찾은 고드름을 한 손에 하나씩 쥐고 지긋이 바라보는 뤼번.
(뤼번이 뭘 할지 감이 오시나요...)
잠시 고드름에서 시선을 뗀 채 꼭 다신 볼 수 없는 세상을 보는 것처럼 주변을 한 번 둘러봅니다.
맑은 하늘과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
대문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땅,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까지
모두 눈에 담은 뤼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붙잡은 고드름에 두 눈을 내리칩니다.
....
다시 어두워진 뤼번의 세상.
하지만 뤼번은 오히려 지금, 더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
뭐지?
뭐야 뒷얘기 더 없어?
"아니 잠깐만 뤼번아,아니 왜!!!!!!!!!!!!!!!"
제가 왜 충격적인 결말이라고 앞서 말했는지 이해가시나요?
결말을 확인한 뒤 '만약에 내가 뤼번이라면...'이라는 가정을 시작해 봤습니다.
내가 생각한 선택지>
1. 마리를 다시 찾아가서 내 마음은 진짜다라고 표현한다.
2. 깨끗하게 마리를 잊고 인생 새로 산다. 난 아직 어리다.
3. 마리를 만날 때마다 눈을 가리고 만난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걸 선택할 건가요?? 뤼번에게 빙의한 후 뤼번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전 절대 뤼번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제목이 blind 즉, 사랑에 눈이 멀었다지만 실제로 눈을 멀게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현실에 찌들어 살았나 봅니다. 세상엔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나 봐요. 물론 이건 영화일 뿐이지만요.
뤼번의 희생 덕분에 여운이 정말 강하게 남았어요. 특히 눈을 찌르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연출이 너무 좋았습니다. 뤼번이 보는 세상을 한 컷 한 컷 정말 천천히 보여주거든요.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다가도 멍한 눈빛으로 엔딩크레딧을 바라보며 '쟤가 왜 그랬을까...'를 되뇌었습니다.
한동안은 로맨스 영화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려고요. 그러고 나서 결말에 대한 감상평을 반드시 물어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X100 궁금하거든요.
그럼 저는 다음에 더 재밌는 이야기 리뷰로 돌아올게요.
20000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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