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재 업고 튀어 정주행을 마쳤다. 16화 내내 주인공 임솔역을 맡은 김혜윤 연기에 감탄하면서 봤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자연스레 김혜윤이 출연한 영화에도 관심이 갔다.
예전부터 OTT 추천 목록에 떴던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가 불현듯 생각이 났고 넷플릭스에 있길래 잠 자기 전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서 영화를 시청했다.
그리고 난 빡이 쳐서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요약
제목 | 불도저에 탄 소녀 (2022) |
감독 | 박이웅 |
출연 | 김혜윤, 박혁권, 오만석, 예성 |
러닝 타임 | 1시간 52분 |
시청 등급 | 15세 이상 관람 가능 |
장르 | 드라마, 복수극 |
지원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
영화는 약 2시간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주 내용이 주인공 혜영이가 복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긴 하나 느와르 영화처럼 역겹게 잔인하고 그런 건 없으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주인공 구혜영이 처한 상황이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져 고군분투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열받고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인공의 현실에 약간의 무력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가만히 있지는 않으니 고구마를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줄거리
혜영은 짬뽕집을 운영하는 구본진의 딸이자
구혜적이라는 초딩 남동생의 보호자이다.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경마에 빠진 아빠를
채찍질한 것도 어린 동생 혜적을 돌본 것도
모두 혜영의 몫이었다.
그 때문인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
너무 어려서부터 세상의 강약약강 시스템을 알아차린 걸까,
혜영은 왼팔 전체에 용문신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팔토시로 가리고 있지만
때에 따라 과격하게 문신을 노출시키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는(아빠 포함)
쌍욕으로 대화를 하는 혜영이지만
동생 혜적은 매우 아끼고 다정하게 대해준다.
집이 없어 짬뽕집 한 칸에서 잠을 자고
부모 존경 전혀 없는 굉장한 하극상 집안이긴 하지만
(경마쟁이 본진을 아빠로 대하지 않음)
혜영은 동생과 따로 집을 구해
행복하게 살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 본진이 남의 차를 훔쳐 도망가다
사람 둘을 치고 본인은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혜영은 본진의 사고 피해자 둘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빠의 짬뽕집마저 2주 뒤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일까지 생겨버렸다.
사고는 아빠가 쳤지만 모든 이해당사자들은
혜영에게 책임지라며 코너로 몰아넣는다.
어린 동생과 둘만 남게 된 혜영은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가기로 한 혜영.
아빠의 교통사고 현장을 살펴보던 혜영은
아빠의 교통사고에 뭔가 의심쩍은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아빠의 짬뽕집 이전 또한 국회의원 후보 최영환과 얽힌
거대 권력의 부당한 거래임을 알아낸다.
하지만 주변에 혜영을 도와줄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건을 파면 팔수록 아빠 구본진도 피해자임을
깨닫게 된 혜영은 결국 혼자서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이 날 억까해..!"
*결말 스포일러 있음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영화는 어느새 나에게 깊은 빡침과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을 선사했다. 약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극 중 혜영이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이 실제로 나에게 덮쳐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저 XX새끼', '아오-'를 연발하며 화병에 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혜영이는 한 때 방송 PD를 꿈꾸며 공부도 곧잘 했던 캐릭터로 비친다. 그랬던 애가 남들에게 강해보이기 위해 왼쪽 팔 전체에 용문신을 하고 모든 걸 다 뺏어가려는 세상에 대항해 필사적으로 자신과 동생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상하게 내 몸에서 기운이 싹 다 빠져나갔다. 혜영이의 복수극이 성공할 확률이 0%인걸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닝 타임 내내 세상에게 억까당하는 혜영이를 보다 보니 현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혜영이 들이 생각이 났다. 청년 보이스피싱, 전세 사기, 취업 사기 등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실제 사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독한 무기력감을 느꼈다.
매사에 화를 내고 악을 쓰는 혜영을 보면서 처음에는 '쟤는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했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엔 '쟤는 악을 써야만 사람들이 말을 들어주는구나'으로 혜영에 대한 내 생각이 점차 바뀌기도 했다. 동시에 아이유 Unlucky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혜영이는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악을 써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모두가 외로운지도 몰라
지워지고 싶지 않아서
악 쓰는지도 몰라
너무 꼿꼿하게 버틴 탓이었을까, 혜영은 결국 부러지고 만다. 뭘 해도 승산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혜영은 동생 혜적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나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 힘이 좀 든다." 결국 혜영은 뇌사에 빠진 아빠의 호흡기를 떼어 하늘로 보내준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최영환(국회의원 후보자)의 중장비 불도저를 훔쳐 아빠의 짬뽕집을 모두 부숴버린 뒤 최영환의 집 또한 모두 부숴버린다.
"지금 내리지 않으면 발포합니다." 경찰의 경고에도 불도저에서 내려오지 않던 혜영은 마지막 '악' 소리를 지르며 결국 경찰의 총에 맞아 불도저에서 내려오게 된다. 아무도 혜영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혜영은 또 이렇게 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혜영은 결국 징역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모범수로 복역 및 여러 시민단체의 진정으로 가석방이 된다.
아빠의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다시 찾아가 사고의 경위에 대해 다시 묻는 혜영은 사고 발생한 날에 대해서 제대로 듣게 되고(저 피해자들이 차로로 들어와서 사고가 난 거였음) 진심 어린 사과도 받게 된다. 사회에 다시 나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혜영은 아빠의 사망보험금을 받게 되고, 입금 내역을 확인한 뒤 깊은 한숨을 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요즘 트렌드인 사이다 결말이 아니라서 엔딩을 조금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이 엔딩이 혜영과 혜적에게 최고의 엔딩이지 않을까 싶다. 혜영이 감옥에 있을 때 시민단체의 진정이 있던 것으로 봐서 최영환의 악행이 어느 정도 사회에 알려졌을 것을 추측할 수 있고 아빠의 사망 보험금 약 4억이 혜영과 혜적이 삶의 기반을 다지기에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복수를 하겠다고 최영환과 끝까지 싸우는 혜영의 모습이 결말에 나왔다면 보는 사람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혜영의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투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화병과 눈물을 오가며 봤던 영화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만 했던 혜영이 나이답게 행복하기만을 바랬던 영화였다. 더불어 김혜윤이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라는 걸 또 깨닫게 된 영화였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면 앞으로 나올 모든 영화,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기대가 될 정도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는 밝고 감성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면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는 인간 악다구니 그 자체였다. 다음엔 한 번쯤 악당 역할을 맡아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윤의 필모 깨기 시도했다가 좋은 영화를 발견해서 좋았다(화는 많이 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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